같은 본을 따라 그려도 저마다 달랐던 민화 이야기
타국에 살수록 우리 문화를 곁에 두는 일은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서민의 소망과 해학이 담긴 민화는 그 시작으로 삼기 좋은 그림입니다. 하노이민화협회 하민담이 앞으로 <한인소식>지면을 통해 우리 민화 이야기를 꾸준히 전합니다. 첫 회에서는 민화의 특징과 현대적 가치를 살펴봅니다.
이름 없는 화가들의 그림
민화의 기원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기의 민화 작품이 직접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이후 불교 미술을 통해 맥을 이어 오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시대 민화는 궁중 화가나 문인화가들의 그림과 달리 계층의 구별 없이 떠돌이 무명 화가, 화원의 제자, 그림에 재능이 있던 서민 등 다양한 이들이 그렸습니다. 원근법이나 비율과 같은 형식을 엄격히 따르기보다는 자유롭고 독창적인 기법으로 조형미를 표현해 낸 것이 특징입니다.
소망을 담아 집 안을 꾸미다
시작은 서민들이 일상생활과 밀접한 소재나 궁중·상류층의 그림을 모방해 그리는 것이었으나, 차츰 장수, 부귀, 기복, 길상, 벽사 등 다채로운 소망을 담아내는 대중 실용화로 발전했습니다. 주로 집안을 장식하거나 혼례와 같은 잔치 공간을 빛내기 위해 쓰였으며, 낙관이 없는 작자 미상의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민화는 서민들의 생활과 종교, 관습, 역사를 순수하고 소박한 생활화로 녹여낸 그림입니다(현대에는 도화서 화원이나 화공들의 그림 및 화풍까지 넓은 의미의 민화에 포함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민화는 서양이나 중국의 전통화처럼 순수 감상만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생활 공간을 꾸미는 ‘장소와 목적에 따른 장식성’을 바탕으로 출발했습니다.
![[하민담의 우리 민화 이야기] 서민의 소망을 담은 생활 그림](https://i0.wp.com/hanoikoreannews.com/wp-content/uploads/2026/10/hamindam-korean-folk-painting-minhwa-story-1-2.jpg?resize=696%2C1108&ssl=1)
그림마다 담긴 뜻
주요 주제별 특징과 상징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화조도(花鳥圖) : 꽃과 새가 어우러진 그림으로, 화목한 가정이나 금실 좋은 부부의 사랑을 상징해 주로 안방을 장식했습니다.
- 어해도(魚蟹圖) : 물고기나 게 등 수중 생물을 그린 그림으로, 알을 많이 낳는 생물의 특성에서 비롯된 다산과 함께 입신양명, 출세, 부귀와 풍요를 기원하며 사랑방이나 자녀 방에 장식했습니다.
- 책거리·책가도(冊架圖) : 서책과 선비들의 애장품을 나열하듯이 그린 정물화로, 학문과 지식에 대한 열정을 담고 출세를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주로 사랑방을 장식했으며, 정조가 일월오봉도 대신 어좌 뒤에 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 문자도(文字圖) :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등 여덟 가지 유교 덕목을 관련 설화나 상징물과 함께 표현한 문자 그림입니다.

같은 본, 다른 그림
민화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바로 ‘본(밑그림)을 두고 따라 그리는 방식’입니다. 화가의 원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정형화된 틀에 그치지 않고 내용과 표현 기법을 저마다 다르게 변주해 냈습니다.
일정한 본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이 복사하듯이 그렸는데도, 그 안에서 작가 개개인의 개성과 솔직함이 드러납니다. 자유로운 구도와 담대한 형태, 익살스러운 해학과 다정하고 따뜻한 정서는 민화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비결입니다.

모사에서 새로운 예술로
이러한 모사 방식은 현대의 민화 작업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과거의 모사는 그림을 배우는 첫 단계이자 원본을 숙달하며 기초 실력을 다지는 훌륭한 교육 방법이었습니다. 민화에서의 모사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 원화를 오차 없이 그대로 복원하여 그리는 경우
- 원화의 틀을 유지하되 일부 요소를 변형해 그리는 경우
- 원화를 바탕으로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과 아이디어를 더해 완전히 재해석하는 경우
이처럼 모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작가의 감성에 따라 다채로운 표현과 색채가 더해지면서, 민화는 오늘날 새로운 예술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초창기 민화가 단순한 형태와 예스럽고 소박한 멋, 화려한 오방색 채색으로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했다면, 현대의 민화는 모사를 넘어 작가의 주관적 감성과 숙련된 기법이 더해져 한층 진화된 예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민화’라는 이름의 역사
한편 ‘민화(民畫)’라는 용어에는 시대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민화의 미학적 가치에 심취했던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처음 사용한 명칭입니다. 그는 민화를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현재 우리 미술사학계에서는 ‘민화’라는 명칭과 개념의 주체성을 바로잡고 그 본질적인 의미를 명확히 정립하기 위한 연구와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국가유산청 / 한국민화뮤지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호연, 《한국의 민화》, 열화당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글 하민담(하노이민화협회·(사)한국민화협회 하노이지부) 이메일 minhwa.hanoi@gmail.com
[행사 안내] 민화 체험 프로그램
오는 10월 24일(토)~25일(일) 열리는 ‘2026 한국대사관 돌담길 문화축제’에서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민화 체험 부스를 운영합니다.
우리 민화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독창적인 멋과 모사의 재미를 직접 체험해 보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