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옥의 소통 레시피] 자녀의 대화역량을 키워주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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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지식 제공자를 넘어 호기심과 사고력, 성찰력을 깨우는 가족 대화 문화

지식과 정답을 AI가 몇 초 만에 찾아주는 시대, 우리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대화 역량’입니다.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질문을 퍼 올리는 부모의 지혜로운 대화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AI 시대,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요즘 부모님들을 만나면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이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AI가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데 우리 아이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고, 맘카페를 서성이고, 유명 전문가의 강의를 듣기도 합니다. AI 시대 자녀 양육에 관한 책과 영상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정보를 찾아볼수록 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독서와 글쓰기라 하고, 또 누구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성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자녀 양육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은 무엇일까?”

변화가 빠를수록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술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와 아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량이 있지 않을까요?

지식은 외주화해도, 사고와 성찰은 외주화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모르는 것은 AI에게 물어봅니다. 몇 초 만에 기깔난 정답이 화면에 쏟아집니다. 지식을 외주화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외주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AI의 결과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성찰로 이어가는 역량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제는 질문 잘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질문하는 기술 몇 가지를 배운다고 해서 좋은 질문이 저절로 나오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좋은 질문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 아이의 내면에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저는 그 마중물이 호기심, 사고력, 그리고 성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성옥의 소통 레시피] 자녀의 대화역량을 키워주는 부모

호기심

심리학자 조지 로웬스타인(George Loewenstein)은 호기심이란 단순히 ‘모르는 걸 알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에 생긴 정보의 간극(Information Gap)’을 인지할 때 생기는 결핍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에선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뭔가 좀 알아야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숫자 6과 8을 좋아해요?”

“태국 사람들이 인사할 때 손 높이가 다른 이유는 뭐예요?”

이런 질문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내가 아는 것’과 ‘상대가 아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호기심의 질문이 발동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양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력

호기심이 질문의 물꼬를 튼다면, 사고력은 질문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어린아이는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왜 하늘은 파래요?” “왜 저 사람은 외국어를 해요?” 하지만 사고가 깊어지면 질문도 달라집니다. “내가 이 선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저 주장이 타당한 것 같지만, 만약 반대 관점에서 본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대화는 이런 사고력을 키우는 강력한 방법입니다.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부딪쳐볼 때 비로소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조금씩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사고하는 연습이 됩니다.

성찰력

성찰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교육학에서는 흔히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능력이지요. AI가 답을 제시하는 시대에는 성찰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답을 얻는 것보다, 그 답을 ‘내 삶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판단하는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호기심이 질문을 만들고, 사고력이 질문을 깊게 하며, 성찰력이 그 질문을 다시 나에게 가져와 성장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역량은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풍성하게 자랍니다.

AI 시대, 자녀의 대화력을 키워주세요

인정하기 싫을 수 있지만, AI 시대의 부모는 더 이상 지식의 공급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지식이나 정보는 부모보다 AI가 훨씬 더 정확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부모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요?

아이가 스스로 질문하고(호기심), 깊이 생각하고(사고력), 자신을 돌아보는(성찰력) ‘내적 역량’을 키워주는 것 아닐까요? 이 역량은 대화로 일궈집니다. 친구, 친척, 이웃을 만나고, 다른 세대 사람을 만나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세요. 사람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듣게 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 먼저 아이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가족 대화 문화’를 만들어보세요.

대화하는 가족 문화 만들기

[조성옥의 소통 레시피] 자녀의 대화역량을 키워주는 부모

몇 년 전, 미국인 친구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제임스 부부는 식사 후 잠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그 집에는 5살부터 18살 청소년까지 무려 6명의 남매가 북적이고 있었고, 일곱째는 태중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무슨 유익한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마음속으로 살짝 긴장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제 걱정은 이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제가 준비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나의 경험을 흥미 있게 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저도 베트남에 가봤어요. 그런데 그 나라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이유는 뭐예요?”

아이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아이들도 내 경험 이야기에 자기들의 경험을 포개었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눈 후, 부모의 말에 따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놀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제임스 가족을 보면서 ‘아, 이게 가족 문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제임스 부부는 손님이 오면 아이들을 방에 가두지 않고 손님과의 식탁으로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임무를 주었지요. 바로 ‘손님에게 마음껏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아이들은 질문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질문을 던져도 사람마다 대답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세상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진리를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부부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말로 설명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줌으로써, 아이들의 호기심과 사고력, 성찰력을 키워주고 있었습니다.

글 조성옥 코치 (조앤리코칭랩 대표, 국제코치훈련원 베트남지부장, 자녀 양육·가족·학습·진로 코칭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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