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칼럼] 기다릴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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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홀의 여정에서 비로소 드러난 품격과 배려

18홀을 도는 동안 우리는 공을 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을 더 많이 지나칩니다. 앞 팀의 지연이나 예기치 않은 흐름 속에서 어떤 마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플레이의 결과는 물론 함께하는 이의 기분까지 달라집니다. 필드 위 피할 수 없는 기다림 앞에서 마주하는 품격과 배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골프는 기다림의 운동입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동반자의 퍼트를 기다리며, 앞 팀이 홀을 비워주기를 기다립니다. 때로는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때로는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립니다. 생각해 보면 18홀을 도는 동안 공을 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의외로 사람의 본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어느 날 라운드에서 앞 팀의 진행이 유난히 더뎠습니다. 티잉 구역에 도착할 때마다 기다려야 했고, 몇몇은 자연스럽게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처음 한두 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작은 지연이 계속 반복되자 분위기는 조금씩 무거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짜증이 쉽게 고개를 듭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뒤의 일정이 밀릴지 모른다는 염려도 생깁니다.

후배 한 명이 앞 팀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하려던 순간, 함께 라운드하던 선배님이 조용히 클럽을 정리하며 말했습니다.

“천천히 가는 날도 있습니다.”

아주 평범한 한마디였습니다. 그렇다고 앞 팀의 진행이 갑자기 빨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서두름 대신 여유가 자리했고, 앞 팀을 바라보던 시선도 자연스럽게 거두어졌습니다. 누군가는 물을 마셨고, 누군가는 가벼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기다림은 그대로였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상황에 감정을 맡기지 않는 힘

그 모습을 보면서 기다림도 결국 하나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한 사람은 짧은 지연에도 예민해집니다. 앞 팀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조금만 늦어도 불평이 나옵니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도 그 감정이 그대로 남습니다. 빨리 쳐야 한다는 생각에 프리샷 루틴이 짧아지고, 평소보다 급하게 스윙하기도 합니다. 결국 앞 팀 때문에 생긴 짜증이 자신의 플레이까지 흔들어 놓는 셈입니다.

반대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그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앞 팀을 재촉한다고 해서 빨라질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감정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장갑을 다시 고쳐 끼기도 하고, 다음 샷을 생각하기도 하며, 동반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그제야 집중합니다. 기다리는 시간과 플레이하는 시간을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골프에서는 서두른 샷이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스윙은 흔들리고, 마음이 앞선 퍼트는 짧거나 길어집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날 선배님은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까지 조용히 호흡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앞 팀이 빠졌다고 해서 서둘러 티잉 구역으로 뛰어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공을 놓고, 목표를 확인하고, 자신의 리듬으로 스윙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성격이 느긋하다는 뜻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맡기지 않는 힘이었습니다.

신속한 플레이와 조급하지 않은 여유

기다림에는 배려도 들어 있습니다.

동반자가 퍼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먼저 다음 홀로 이동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이 공을 찾고 있는데 자신의 플레이만 재촉한다면 함께하는 사람은 불편해집니다.

반대로 조금 늦더라도 함께 기다려 주는 사람 곁에서는 마음이 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실수한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골프에서 무조건 느리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태도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준비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계속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배려와는 거리가 멉니다. 플레이는 신속하게 하되, 피할 수 없는 기다림 앞에서는 조급해하지 않는 것. 기다릴 줄 아는 것과 남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차이를 아는 것도 골프 매너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비즈니스에서도 기다림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협상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결정에는 숙성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답을 빨리 듣고 싶다고 상대를 재촉하면 오히려 관계가 멀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판단하는 속도가 다르고, 결정을 내리는 방식도 다릅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상대의 속도를 존중합니다. 그리고 그 존중이 쌓이면 신뢰가 됩니다.

실력은 연습장에서, 품격은 기다림 속에서

라운드 후반으로 갈수록 앞 팀과의 간격도 조금씩 벌어졌고 진행은 자연스럽게 풀렸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누구도 앞 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의 답답함도 어느새 잊혀 있었습니다. 결국 그날의 기억으로 남은 것은 느렸던 진행이 아니라 편안했던 분위기였습니다. 상황을 바꾼 것은 우리가 아니었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라운드를 마친 뒤에도 “천천히 가는 날도 있습니다”라는 선배님의 그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골프장에서만 필요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서둘러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일이 늦어지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급해한다고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실력은 연습장에서 쌓이지만, 품격은 이런 기다림 속에서 자라나는지도 모릅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곁에서는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릅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편안함이 있고, 실수해도 기다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골프 칼럼] 기다릴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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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호환 프로

하노이/박닌 속성 끝장 레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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