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에세이] 변화, 불멸, 부활 – 나비를 그린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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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시간을 거쳐 날아오르는 나비의 생태와 예술적 상징성, 이를 화폭에 담은 거장들의 이야기

지구상에는 포유류 5,000종, 조류 20,000종에 비해 곤충이 90만 종 이상 현존하며, 나비와 나방의 종류만 해도 2만 종 이상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도 독특한 생태와 아름다움을 지닌 나비는 오랜 세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번 9월호에서는 예술 속에서 나비가 지닌 상징성을 살펴보고, 나비를 화폭에 담아낸 화가들과 작품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나비의 생태적 특징과 확장된 상징성

나비라는 말은 나비가 “나불나불”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재밌게도 나비는 세계 각국에서 다채로운 명칭으로 불립니다. 영혼을 뜻하는 그리스어 ‘프시케(Psyche)’, 성모 마리아 구전과 연결된 스페인어 ‘마리포사(Mariposa)’, 조상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믿었던 러시아어 ‘바보치카(Babochka)’, 버터 색감과 민속 신화에서 유래한 영어 ‘버터플라이(Butterfly)’, 날개의 펄럭임을 형상화한 한자어 ‘호접(胡蝶)’이나 마인어 ‘라마라마(Rama-rama)’, 프랑스어 ‘빠삐용(Papillon)’, 이탈리아어 ‘파르팔라(Farfalla)’ 등이 대표적입니다.

알이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가 되고, 거기서 새로 태어나는 모습 때문에 나비는 “변화(Change)”, “성장(Growth)”이라는 본원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추가적 의미가 “불멸(Immortality)”, “재생(Rebirth)”, “영원(Eternity)”, “부활(Resurrection)” 같은 어휘로 그 외연을 확장하게 됩니다.

색상과 종류에 따른 의미 : 흰나비는 “영혼(Soul)”을 상징하고, 호랑나비는 “길운(Good Luck)”을 상징합니다. 중국에서는 나비가 불멸성을 나타내고, 매화와 나비를 같이 그려 장수(Longevity)를 기원합니다.

신화와 심리학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시케(Psyche)”의 상징이 바로 나비입니다. 미술작품에서도 흔히 날개를 가진 형상으로 묘사되며, 프시케는 정신 또는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영혼의 고통을 견뎌내어 사랑의 기쁨을 얻는 나비는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심리학자 융(Carl Jung)은 나비가 영혼 또는 자기 자신(Self)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기후 생태와 예술적 영감 :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현되는 불가결·불가피한 흐름인 기후변화 및 기후위기의 상징으로 나비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예술가들은 나비에 매료되었습니다. 나비가 오랜 시간 애벌레 상태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다가 부화하는 모습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 이상으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에 따라오는 변화와 성공, 생명의 의미를 전해줍니다.

동서양의 시각 차이 :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비는 영혼을 상징하며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사랑(Love), 기쁨(Joy), 행복(Happiness), 부귀(Wealth)를 상징합니다. 반면 유럽의 정물화 등에서는 인간의 영혼 혹은 윤리적 강제성을 상징하며 경고(Warning)의 메시지를 던지는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빨간색 나비는 세속적 소유(Secular Possession)를, 흰색 나비는 세속적 소유의 덧없음(Futility)과 인생의 무상함(Transience of Life)을 상징했습니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 나비는 내면의 자아, 존재 자체를 표상하기도 합니다. 기원전 300년경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니다 깨어난 후,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불안정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사랑과 프시케(L'Amour et Psyché)》, 1899년. 에로스와 프시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하늘을 나는 장면으로, 프시케의 등에 그려진 나비 날개가 영혼을 뜻하는 그리스어 '프시케'의 상징을 나타냅니다. 220×128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사랑과 프시케(L’Amour et Psyché)》, 1899년. 에로스와 프시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하늘을 나는 장면으로, 프시케의 등에 그려진 나비 날개가 영혼을 뜻하는 그리스어 ‘프시케’의 상징을 나타냅니다. 220×128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육치(陸治), 《유거락사도(幽居樂事圖)》 중 「몽접(夢蝶)」, 명대(明代). 버드나무 아래 잠든 인물 위로 나비 두 마리가 날아드는 장면으로, 장자의 호접지몽을 형상화했습니다. 국립고궁박물원(대만 타이베이) 소장 (자료 출처: 국립고궁박물원 Open Data)
육치(陸治), 《유거락사도(幽居樂事圖)》 중 「몽접(夢蝶)」, 명대(明代). 버드나무 아래 잠든 인물 위로 나비 두 마리가 날아드는 장면으로, 장자의 호접지몽을 형상화했습니다. 국립고궁박물원(대만 타이베이) 소장 (자료 출처: 국립고궁박물원 Open Data)

“가톨릭의 편견에 맞서 곤충의 완전변태를 화폭에 담은 생물학자”

마리아 시빌라 메리안 (Maria Sibylla Merian, 1647~1717) | 독일

[미술사 에세이] 변화, 불멸, 부활 – 나비를 그린 화가들

164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판화가의 딸로 태어난 메리안은 생물학자이자 동물화가였습니다. 뉘른베르크와 네덜란드를 거치며 나비를 집중 관찰한 그녀는 나비를 “썩은 진흙에서 나온 악마”로 규정한 당대 로마 가톨릭에 정면 대응하여 나비의 성장 과정을 정밀히 연구하고 기록했습니다. 1699년 남미 수리남을 방문해 관찰한 동식물 삽화집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1705)는 당시 러시아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귀족들에게 생생한 사실성과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주요 작품 :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 《꽃과 나비》, 《애벌레의 이상한 변태와 개화》, 《새로운 꽃에 관한 책》 등

[미술사 에세이] 변화, 불멸, 부활 – 나비를 그린 화가들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 1705) 메리안이 남미 수리남에서 2년간 직접 관찰한 곤충 60여 종의 생애주기를 기록한 대표 저서. 완전변태 과정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Metamorphosis Insectorum Surinamensium, 1705) 메리안이 남미 수리남에서 2년간 직접 관찰한 곤충 60여 종의 생애주기를 기록한 대표 저서. 완전변태 과정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소박한 정물에 신앙의 영혼을 담은 은둔의 화가”

아드리안 코르트 (Adriaen Coorte, 1665~1707) | 네덜란드

1665년경 네덜란드 미델뷔르흐에서 출생한 코르트는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정물화가입니다. 혼데코터 휘하에서 그림을 배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소박한 도자기와 절제된 빛을 활용하여 소형 정물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생애 대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채 20세기에야 재발견된 그는, 과일과 나비를 자주 함께 그렸는데, 이는 꿀을 먹는 나비의 생태적 습성을 반영함과 동시에 모든 관심을 하늘에 두고 살아가는 신실한 신앙인의 삶을 투영한 것입니다.

주요 작품 : 《3개의 복숭아와 나비》, 《아스파라거스》, 《복숭아와 살구》, 《딸기 정물》, 《3개의 모과와 나비》 등

《3개의 복숭아와 나비》(Three Peaches on a Stone Ledge with a Painted Lady Butterfly, 1693~95년경) 어두운 석판 위 복숭아와 나비를 정교한 빛으로 그려낸 작품. 절제된 구성 속에서 신실한 영혼의 삶을 투영합니다. 31.3×23.3cm, 종이에 유채(패널 배접), 개인 소장
《3개의 복숭아와 나비》(Three Peaches on a Stone Ledge with a Painted Lady Butterfly, 1693~95년경) 어두운 석판 위 복숭아와 나비를 정교한 빛으로 그려낸 작품. 절제된 구성 속에서 신실한 영혼의 삶을 투영합니다. 31.3×23.3cm, 종이에 유채(패널 배접), 개인 소장

“악몽의 목탄화에서 색채의 꿈으로, 나비에 상징을 담은 상징주의 거장”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1840~1916) | 프랑스

[미술사 에세이] 변화, 불멸, 부활 – 나비를 그린 화가들

1840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르동은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초기에는 목탄화와 석판화로 해골, 눈, 신화적 형상 등 악몽에 가까운 이미지를 그려 ‘누아르(Noirs)’ 시기로 불렸습니다. 1900년 무렵을 기점으로 파스텔과 유화 등 색채 작업으로 전환했고, 이 시기부터 나비를 반복적으로 그렸습니다. 그의 나비는 윤곽선 없이 흐릿한 색면으로 표현되어, 생물학적 사실보다는 꿈과 무의식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주요 작품 : 《나비》, 《나비의 환기》, 《반사》 등

《나비》(Butterflies, 1910) 윤곽 없이 번지는 색채로 표현된 몽환적 나비 연작. 상징주의가 그려낸 꿈속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64.8×49.8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나비》(Butterflies, 1910) 윤곽 없이 번지는 색채로 표현된 몽환적 나비 연작. 상징주의가 그려낸 꿈속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64.8×49.8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실제 나비 날개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그린 현대미술의 이단아”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1965~) | 영국

[미술사 에세이] 변화, 불멸, 부활 – 나비를 그린 화가들

1965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데미안 허스트는 1990년대 YBA(Young British Artists) 조류를 이끌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현대미술가입니다. 포름알데히드 진열장에 뱀상어를 넣은 파격적인 작품으로 터너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논란과 주목을 받았습니다. 초기작부터 나비를 적극 다루어 온 그는 실제 나비 날개 약 2,700마리를 사용해 만화경을 연출한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등을 통해 생과 죽음(Life and Death)의 거대한 순환을 실체화했습니다.

주요 작품 : 《사랑의 안과 밖》,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봄날의 자장가》, 《천사의 해부학》 등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I am become Death, Shatterer of Worlds, 2006) 실제 나비 날개 약 2,700마리를 사용해 만화경 형상을 연출한 작품. 화려함 속에서 생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줍니다. 213×533cm, 나비 날개와 유광 페인트, 개인 소장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I am become Death, Shatterer of Worlds, 2006) 실제 나비 날개 약 2,700마리를 사용해 만화경 형상을 연출한 작품. 화려함 속에서 생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줍니다. 213×533cm, 나비 날개와 유광 페인트, 개인 소장
[미술사 에세이] 변화, 불멸, 부활 – 나비를 그린 화가들

글 오재학 전 호치민총영사

  • 1978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 2006.3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겸임교수
  • 2008.5 주짐바브웨대한민국대사관 대사
  • 2011.8 주호치민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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