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쉘터부터 JW 메리어트까지, 필립 스탁의 디자인 철학이 숨 쉬는 싱가포르 대표 호텔 3곳
부티크 호텔의 대부라 불리는 ‘이안 슈레거(Ian Schrager)’의 호텔 연대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 있다. 20세기 디자인의 아이콘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이다. 이안 슈레거의 비즈니스 통찰력과 필립 스탁의 파격적인 예술성이 만난 협업은 호텔을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에서 ‘문화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켰다. 뉴욕 ‘Royalton Hotel(1989)’을 시작으로 ‘Paramount Hotel(1990)’로 이어진 이들의 여정은 호텔 로비를 투숙객과 지역 주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사교의 장으로 만든 ‘로비 사교’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탄생시켰다. 이어 마이애미의 ‘Delano Hotel(1995)’과 LA의 ‘Mondrian Hotel(1997)’을 통해 어반 리조트라는 트렌드를 새롭게 제시하며, 이들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환대 산업의 트렌드 세터로 자리 잡았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공간들은 몇 개의 큰 공통점이 있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일상과의 완벽한 단절을 경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원래의 크기를 압도하는 오버사이즈 오브제를 과감히 배치하고, 일상과의 경계를 만들어주는 출입구와 이를 극대화해주는 통로를 통해 기대감을 심어준다. 또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을 의외의 장소에 배치하거나 외부에 있어야 할 것을 내부에, 내부에 있어야 할 것을 외부에 배치하는 등 비일상적인 공간을 연출하며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뉴욕의 ‘허드슨 호텔(2000)’이 그러했듯, 그의 공간은 오픈과 동시에 당대의 가장 트렌디한 문화적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이 거장의 디자인 유산과 DNA는 아시아의 가장 역동적인 디자인 허브, 싱가포르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숨 쉬며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필립 스탁의 철학이 깃든 싱가포르의 대표 호텔 세 곳을 통해, 그가 남긴 비일상의 미학을 추적해 본다.
1. 마마 쉘터 싱가포르
Mama Shelter Singapore
프랑스에서 시작된 ‘마마 쉘터’는 필립 스탁이 브랜드의 초기 콘셉트와 디자인 개발에 깊숙이 참여하며 탄생한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호텔 브랜드다. (현재는 아코르 그룹에 소속되어 있음) 비록 마마 쉘터 싱가포르는 그의 직접적인 인테리어 설계로 완성된 것은 아닐지라도, 호텔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는 정서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필립 스탁적’이다. 필립 스탁이 브랜드에 심어놓은 핵심 가치는 바로 ‘격식 없음’과 ‘유쾌한 반전’이다.

마마 쉘터 싱가포르의 객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침대 머리맡에 걸린 독특한 ‘가면’이다. 루니 툰 시리즈와 같은 대중문화 속 캐릭터 가면들은 호텔이 주는 특유의 엄숙함을 한순간에 깨부수며 방문객의 실소를 자아낸다. 이 가면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이 마마 쉘터 호텔의 시그니처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디자인을 과시의 수단이 아닌 대중적인 즐거움으로 환원하고자 했던 필립 스탁의 ‘유머 감각’, 즉 고가의 럭셔리가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민주적 디자인’ 철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화려하고 세련된 싱가포르의 도심 한복판에서, 마마 쉘터는 이 키치한 유머를 통해 편안하면서도 짜릿한 일탈을 선사한다.
2. 몬드리안 싱가포르 덕스턴
Mondrian Singapore Duxton

1996년, 이안 슈레거와 필립 스탁이 LA에 선보였던 ‘몬드리안 호텔’은 당대 부티크 호텔의 정점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싱가포르 덕스턴 힐에 상륙한 몬드리안 역시 그 화려한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덕스턴 힐의 지역적 특성을 흡수하면서도, 이 호텔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오리지널 몬드리안의 세련된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단순히 머무는 호텔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트렌드 세터들이 모여드는 ‘로비 사교’의 장을 넘어, 호텔 안의 모든 F&B 공간들이 트렌디한 사교의 무대가 되었다. 그중의 백미는 화려한 네온과 열대식물 터널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클럽 겸 바, ‘정글 볼룸(Jungle Ballroom)’이다. 1970년대 뉴욕의 밤을 지배하며 이안 슈레거를 전설로 만들고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 뉴욕의 나이트클럽 ‘Studio 54’의 뜨거운 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두 거장의 손길이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의 뼈대를 이루는 이안 슈레거와 필립 스탁의 헤리티지가 어떻게 시공간을 넘어 한 도시의 문화를 주도하는지 증명하는 완벽한 사례다.
3. JW 메리어트 싱가포르 사우스 비치
JW Marriott Hotel Singapore South Beach

앞선 두 호텔이 필립 스탁의 디자인과 브랜드 DNA를 계승한 곳이라면, JW 메리어트 싱가포르 사우스 비치는 필립 스탁이 직접 디자인한, 그의 디자인 철학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진짜 ‘성지’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로비를 압도하는 화려한 디지털 아트와 유선형 가구, 특이한 조명들이 마치 필립 스탁이 설계한 거대한 연극 무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즐겨 쓰는 공간 구성 기법인 ‘오버사이즈 오브제’와 ‘비일상적 연출’은 이곳에서 절정을 이룬다. 특히 수영장 주변에 배치된 테이블과 의자들은 가구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에 가깝다. 싱가포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이색적으로 어우러지며, 필립 스탁이 그토록 강조했던 ‘일상과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다. 이곳에서 투숙객은 완벽하게 연출된 비일상의 공간이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세 곳의 호텔은 필립 스탁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은하계에서 파생된 별들과 같다. 환대 산업에 디자인을 들여 세상을 바꾸었던 거장의 유산은 지금도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호텔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닌, 일상을 잊고 새로운 꿈을 꾸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글 쓰는 호텔리어 에이프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