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을 바꾸는 건 정부가 아니라 반도체”
해방 이후 도입된 우리 교육의 핵심은 ‘근대교육의 대중화’였다.
산업화 시기에 발맞춰 표준화된 지식을 대량으로 전수하기 위해 도입된 이 체제는, 교실에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학생은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주입식 교육을 수십 년간 고착시켜 왔다. 공고하던 이 관성에 균열이 생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였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학교의 본질적인 기능에 대해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 AI 디지털 교육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이제 시대의 화두는 명확하다. 규격화된 대중교육의 시대를 끝내고, AI를 활용한 ‘개인별 맞춤형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위성과 현실의 격차는 생각보다 크다. 교육 현장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수많은 걸림돌에 부딪히고 있다. 선거로 선출된 교육감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디지털 기기를 보급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교실 구석에 쌓여 있다. 대치동 학원가는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며 과거의 주입식 입시 경쟁 체제를 공고히 유지한다. 교육은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영역이기에, 정부조차 과감한 개혁안을 내놓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 현장의 수용성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최근 이 교착 상태를 깨뜨릴 결정적 촉매는 교육 내부가 아닌 외부의 ‘산업 생태계’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의 파격적인 성과급을 둘러싼 논쟁은 교육이 국가 산업 재편과 얼마나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지 잘 보여준다. 과거 무조건적인 의대 진학만을 고집하던 최상위권 인재들의 시선이 이제 고등학교나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로 이동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교육이 단순한 학위 취득을 넘어, 사회적 보상 체계와 미래 성장 동력의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산업 생태계의 거울’임을 증명한다.
결국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 거대한 재편의 물결은 정체된 교육 혁신을 가속화할 가장 실질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의 기준이 ‘정답을 맞히는 능력’에서 ‘AI와 협업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능력’으로 이동할 때, 비로소 방치되었던 디지털 기기들이 교실에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산업 생태계의 변화는 교육 주체들에게 “왜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AI 디지털 교육으로의 전환을 완성하는 실천적인 촉매가 될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과제는 이 산업적 동력을 발판 삼아 교육의 본질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플랫폼을 통해 학생 스스로 학습을 주도하는 ‘자기주도성’을 기르되, 기술이 강조될수록 교사와 학생 간의 정서적 교감인 ‘휴머니티(Humanity)’를 잃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산업의 역동성이 교육의 문법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힘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우리는 비로소 ‘근대교육의 대중화’라는 낡은 틀을 깨고 진정한 맞춤형 교육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박혜자 (한인소식 편집위원, 코이카 어드바이저 / Global CEO Academy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