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내 마음에 든든한 여백을 만들어 상대방의 마음을 담아내는 일
아들이 사춘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 무렵 우리 집의 대화는 대개 침묵이거나 싸움이었습니다.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거나, 밖에 나가 늦게야 귀가하곤 했습니다. 식탁 위에는 “네”, “아니요” 같은 메마른 대답만 떨어졌습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시기였기에 입시 서류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물어보면, 대화는 금세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언젠가 아들이 지친 기색으로 “오늘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아이의 마음을 품기보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공부하는 게 원래 힘든 거야.”
“조금만 있으면 졸업이니까 참고 그냥 해.”
사랑해서 한 말이었지만 제 사랑의 조언은 아들에게는 잔소리로, 걱정은 간섭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사랑은 충분했지만, 그 사랑을 담는 대화의 그릇이 너무 거칠고 일방적이었습니다.
불판 위에서 배운 ‘나와 다른 취향’
청년이 된 아들과 마주 앉아 고기를 굽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집게를 들고 고기를 올리자, 아들이 불판 위를 살짝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먹을 고기는 내 취향대로 구울 테니까 엄마 아빠는 내 건 건드리지 마세요.”
순간 조금 서운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가족끼리 같이 먹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들의 의도를 먼저 확인해 보았습니다.
“각자 알아서 따로 구워 먹자는 뜻이니?”
그러자 아들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제가 구운 고기를 드시는 건 좋아요. 그런데 제가 먹을 고기는 제 방식대로 굽게 두셨으면 해요.”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바싹 익힌 고기를 좋아했고, 저는 육즙이 촉촉한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취향이 다를 뿐 부모를 배척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는 고기를 굽는 방법보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습니다. 부모든 자녀든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익히고 바꾸려 들면 인생이라는 행복한 식탁은 깨지고 맙니다.
열 살의 세대 차이, 수십 년의 시공간
식사를 이어가며, 저는 요즘 제 일상의 이야기를 먼저 슬그머니 꺼내놓았습니다.
“엄마(아빠)는 요즘 스물세 살짜리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혹여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는 중이야. 행동도 조심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면서 많이 격려해주고 싶거든. 비록 세대 차이는 나더라도 같이 공부할 만한 멋진 어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지.”
조용히 듣고 있던 아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저도 그런 걸 느껴요. 겨우 열 살 어린 사촌 동생을 봐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저와 참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나와는 학교 분위기도 다르고 사회도 바뀌었으니, 사회적 인식이나 고민도 다른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웃음이 났습니다. 고작 열 살 차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끼는데, 수십 년의 시공간을 건너 만난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섣부른 방식으로 “에이, 겨우 열 살 차이에 무슨 세대 차이야?” 혹은 “네가 그렇게 느끼면 우리는 오죽하겠니?”라며 말을 받아쳤다면 대화는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아마 아들은 이내 입을 닫거나, 자기주장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들의 느낌을 그대로 인정하며 다르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느꼈구나.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다르게 느껴졌어?”
어떠한 판단이나 훈계도 섞지 않은 중립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보다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이 덜한 것 같아요.”
순간 제 머릿속에는 언론에서 접한 학교폭력 기사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요즘도 얼마나 심한데…’라며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네가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는 어땠어? 거기도 친구들 사이에 돈을 빼앗거나 괴롭히는 일이 있었니?”
아들의 상황과는 조금 거리를 둔 일반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아들은 곧바로 답했습니다.
“돈을 빼앗지는 않았지만 괴롭히는 아이들은 있었죠.”
굳게 닫혔던 아들의 마음이 열리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더 깊은 질문을 건넸습니다.
“혹시 너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어?”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천천히 그동안 꺼내 놓지 않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좀 더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했어요. 거긴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는 시골 학교였잖아. 미국 문화를 잘 몰랐고 너무 어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는데, 그냥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괴롭히더라고요.”
아들이 대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당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음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니 미국 학교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하나씩 꺼내 놓았습니다.
만약 제가 중간에 “사촌 동생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왜 네 이야기로 넘어가?”라며 말을 끊었다면 어땠을까요? 혹은 “왜 그때 엄마 아빠한테 말하지 않았어?” 하고 다그쳤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아들은 다시 입을 굳게 닫았을 것입니다.
그날 저희 부부는 어떠한 조언도,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감하며 들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했습니다. 아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속도에 맞추어 걸었습니다. 그뿐이었는데 아들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왔습니다.
저는 소통이란 결코 화려한 말재주나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소통은 내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든든한 여백을 만들어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는 일입니다.

사춘기 자녀의 마음을 여는 대화의 4단계
자녀의 마음 문을 열고 깊은 속마음까지 가닿고 싶어 하는 부모님들을 위해, 그날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대화의 4단계’를 소개합니다.
1. 부모의 작은 이야기로 시작하세요.
“숙제는 다 했니?”, “시험공부는 얼마나 했어?” 같은 취조형 질문 대신 부모의 소소한 일상이나 감정을 먼저 가볍게 꺼내보세요. “엄마가 오늘 새로운 모임에 갔는데, 좀 괴짜 같은 사람도 왔더라고.” (엄마 이야기)
2. 주변 이야기로 스몰 토크를 이어가세요.
남의 이야기는 말문을 쉽게 열 수 있습니다.
“네 친구들 중에도 이런 행동하는 사람이 있니?”
3. 조심스럽게 아이의 이야기로 들어가세요.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이 도움이 됩니다. 평가받지 않고,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주관적인 생각을 중립적으로 물어봅니다.
“너는 어땠어?”, “너도 그런 상황을 겪었니?”,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줄래?”
4. 공감과 수용해 주세요.
아이의 말에 평가, 판단, 해결, 훈계하지 말고 마음을 받아주세요.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행동했었구나.” 이 짧은 말들이 사춘기 자녀에게는 “엄마,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는구나”라고 느끼게 합니다.
[셀프 코칭을 위한 성찰 질문]
- Q1. 최근 자녀와 나눈 대화를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따뜻한 공감의 말과 충고나 조언(지적)의 비율은 각각 어느 정도였나요?
- Q2. 만약 오늘 자녀와 단 10분 동안만 대화할 수 있다면, 지금 자녀의 어떤 부분에 가장 호기심이 생기시나요?

글 조성옥 코치 / 조앤리코칭랩 대표, 국제코치훈련원 베트남지부장, 자녀 양육·가족·학습·진로 코칭 전문가





